공지사항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上,下권) - 정진호 Lillian 25-02-20 22:45

2017년 운명한권 제18회 시와경계 신인상 -권은좌 묵은지 / 권은좌 배가 고프다 돌돌 엉겨 붙은 김밥 질겅 문다 못난 년 꿀꺽, 시외버스 터미널 매표소 앞에서 되돌아 온 년 꿀꺽, 십리도 못가는 년 꿀꺽, 넝쿨넝쿨 굴러온 것들 꿀꺽, 명치끝에서 엄마가 꿀꺽, 울컥 냉장고 속 묵은지 송송 썰어 프라이팬 위에 볶고 도톰한 계란말이 길게 썰다 눈물이 난다 울 엄마도 그랬지, 시집살이 고달픈 날 아무도 몰래 딱 한 잔 했잖우, 그래요 그래요 시집살이 끝나던 날, 울 엄마 다시 못 올 먼 길 가던 날. 대청마루에 박바가지 엎어놓고 박살내더니 묵은 속내 다 내렸잖수. 이제는 뇌졸중으로 자리보존하고 누워 울 일 없잖우 천천히 먹어라 아가, 넌 늘 체기가 있을게다 내 밥숟가락 위 묵은지 얹어주시던 울 엄마 묵은 엄마 형식적인 풍경 / 권은좌 치킨 가게 앞, 기름에 젖어서 죽은 것들의 비린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스크 쓴 그녀가 맥 풀린 채 서 있던 곳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봉투가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매 월 한 번씩 만나는 사이라고 했다사람들의 얼굴에는 눈물자국도 없이그녀가 주는 마지막 음식이라며 애써 위안의 말을 찾기에 바빴다나는 돼지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빨간 덧신을 신은 어머니를 태워 아버지 곁으로 모셔놓고 돌아온 날도 그랬다사람들은 눈물도 없이 어머니가 주는 마지막 음식이라는데가끔은 키득거리기도 하면서 건배도 하면서한참을 있다 갔었다​그때나 지금이나 장례식장 안 사람들의 눈빛은 표정이 없었다나는 슬그머니 풀어놓은 검정 스카프를 거머쥐었다치킨가게와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봉투 사이신발을 고쳐 신고 있는 그녀의 환영이 스쳤다혼자 가는 길이었다 월매 다찌 / 권은좌 이놈의 남정네들초등학교 정기모임만 갔다하면고주망태 되어 돌아온다206호 성님, 803호 아우님 월매 월자만 들먹여도 치를 떤다​도대체 월매년이 얼마나 알랑방귀를 뀌길래기필코 월매년 날려 보낼 기세다​월매 다찌 받아봅시다껍질땅콩이 한 접시 등장하는데마늘과 땡초 넣은 번데기조림 나오고연둣빛 풋콩, 삼색전, 삼색나물, 홍합 미역국조갯살 무침에 삶은 꽃게 한 그릇, 운명한권 뚝배기 계란찜돼지고기 안심 장조림, 오징어 미나리 초무침 기본맥주 3병추가하면 새큼달큼한 가오리무침에다 고등어조림, 회초밥 다섯 점가자미 한 마리 노릇하게 구워 나온다월매년 상차림 챙기느라 바쁘고동무가 권하는 술잔 받아 마시기에 신이 나고취기 오른 밥상에 따뜻한 밥 덤으로 나르는 월매성님이 따르는 한 잔 술에 가자미 한 점 먹고 가자미눈으로 탐색 중 ​206호 성님, 803호 아우님월매년 탐색하기 실패 [당선 소감] 가슴 저리게 와 닿은 詩語들 / 권은좌​어린 시절부터 무작정 글쓰기가 좋았던 나는 15년 전 구독하던 조간신문에 백일장 장원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벗어나기 힘들었던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가슴 저리게 시가 와 닿았습니다. 더구나 작품의 시인 주소가 바로 이웃, 무턱대고 찾아간 계기로 시 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였고 어느 덧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이왕 시를 쓰려면 등단 절차를 밟아라. 그렇지 않으면 결혼식 하지 않고 평생 동거만 하는 느낌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이제야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 쓰는 일이 달라질 것은 없겠으나 더디더라도 제 삶만큼만 가겠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저에게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신 박노정 선생님, 손영희 선생님, 조향옥 시인을 비롯한 화요문학회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학업을 끝맺음으로 이끌어주고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 문우이자 친구 정희정, 나의 가족, 사랑하고 감사합니다.그리고 시와 경계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권은좌 경남 진주 출생 ​[제18회 《시와경계》 신인우수작품상 심사평]삶의 서사를 노래하다 / 심사위원 : 편집위원 일동, 김석준(글)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어와 서사를 마주 세운다. 문학은 서사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법, 즉 문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운명의 목소리이다. 때론 간절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목소리로 때론 알레고리에 침전된 일상과 마주 선 채, 하나의 서사를 운명과 마주 세운다. 따라서 시인에게 시란 시간의 선율이 전하는 생명의 숭고한 여율인데, 이는 시가 갖추어야할 첫 번째 덕목이다. 각자 자신에게 허여된 운명의 시간을 노래하되, 그것을 운명한권 새로운 의미 생성과정의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시인의 과제이다. 각자 말하는 서사의 기술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각자 처한 실존의 위치에서 삶의 서사를 노래한 세 시인을 《시와 경계》 식구로 기꺼이 맞아들인다. 문설의 「바람박물관」 외 2편은 시간에 기입된 존재의 다양한 문양을 자신만의 고유한 감성으로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삶을 해석하는 시인의 독특한 관점을 육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문설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해석능력은 시인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인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의미화 하는 능력, 즉 새로운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의미, 새로운 문체, 새로운 표현법을 찾아서 더욱 정진하면, 참 좋은 시를 많이 창작하리라 믿는다. 때론 자신의 삶의 서사에 기입된 상처의 지대를 무량하게 바라보면서, 때론 타자와 자신 사이에 놓인 균열을 봉합하면서, 시인이라는 숙명을 아름다운 표현법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김령의 「가볍고 가벼운」 외 2편 역시 삶의 서사를 시말 속에 육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노래가 아니라, 시간과 환상이 만든 어떤 허구를 인간학으로 대위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은 잘 여물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따라서 그/녀의 표현법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서사적 비전을 시말 속에 육화시킬 잠재적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어쩌면 미래의 김령이 환상의 세기를 만족시키는 시의 진경에 들어서기를 기대해본다. 특히 시 「문」은 인간학적 진실을 노래한 다른 두 편의 시와 달리 시간에 포획된 환상의 문법을 시말로 발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시가 아닌 미래의 시일지도 모른다. 권은좌의 「묵은지」 외 2편은 일상성 속에 침전된 현대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때론 자신에게 속한 일련의 서사를 가슴 아프게 그려내면서, 때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 기입된 삶의 진실을 성찰하면서, 삶의 서사가 곧 시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괴테가 『시와 진실』에 말한 것처럼, 시는 운명한권 진실을 압박하는 존재의 언어이다. 특히 시 「형식적 풍경」은 인간학이라는 허구에 드리워진 삶의 풍경을 타나토스와 대비켜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이고, 죽음이다. 절절하고 아팠다. 궁핍한 시대의 가난이 떠올랐다. 이제 타자에게로 시선점을 옮겨 시세계가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해본다. 문설, 김령, 권은좌 세 분의 등단을 축하드린다. 어떤 시인은 등단 이후 등단작을 뛰어넘지 못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인은 등단작 이후부터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시인이라면 등단작을 뛰어넘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점을 명심하며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 2017년 제18회 시와 경계 신인상 –김령 가볍고 가벼운/ 김령 새벽안개 속화섬댁 리어카 끌고 물질 나선다숨을 참고 병과 박스를 건져 올린다오래 머문 곳은 어디나 집이 되어서빈 병은 자꾸 손을 뿌리치고박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그녀의 생에서 빠져나간 이름들가만가만 온기 보태어 묶으면주름진 손고랑을 채우는 바람​등대이던 아들 따라 뭍으로 온 화섬댁숨비 소리 같은 아들 떠나고리어카는 온기를 잃었다인적 끊긴 해거름녘골목길 깡통에 세든 노을 대문을 기웃거린다​그녀 마른기침으로 물질 나간 날바다 한 가운데 갇혔다조금 더 가면 저기 부표인데화섬댁 하늘로 날아오르고바닥엔 흰 새 한 마리한 호흡만 참았다면, 그녀그리던 섬에 닿았을까물결이 모래 그림 지우듯바퀴는 새의 날개를 넘나든다잠시 드러났던 바닥 다시 밀물 차오른다​그리운 꽃섬 그녀, 도착했을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 김령 우리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더 가까운 조상은 김해에 터 잡은 김씨중간에 김 씨는 이 씨와 결혼하고 그 후손은주 씨와 결혼하고 그 후손은 최 씨와또 박 씨와 정 씨와 또 모 씨와김해 김 씨 피가 5g도 안될지라도​김문호*는 누구 핏줄이라 우겨볼 언덕이 없었다 1961년생 추정, 성은 김 씨로 추정, 확실한 것은 가난과 구멍 난 폐뿐이었다 이 땅에 존재해도 된다는 증명을 얻기 위해 그는 최초의 한양 김 씨 시조가 되었다 2008년부터 한양 김 씨 시조로 7년을 살았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강봉수*는 번지 운명한권 미상 부모 미상에게서 태어나 보육원 앞에서 발견되었다 원장의 조각난 기억들로 이름을 얻었으나 이 땅에 자신을 증명해줄 적籍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에서 나왔다 폐지 줍던 최 씨가 불쌍히 여겨 거두었으나 입양절차는 없었다 그는 2004년 한양 강씨 시조가 되어 일가를 이룰 권리를 얻었으나 끝내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 내 핏줄기의 핏줄기를 타고 올라가 뿌리를 남기지 못한 시조를 만난다 머리통 하나에 사방에 네 개의 눈 여덟 개의 팔 다리, 네 다리로 달리다가 두 발로 달린다 세렝게티의 넓은 초원을 사자와 더불어 춤을 추듯 내달리다 때가 되면 기꺼이 사자의 먹이로 팔 하나씩 내어 미는. 바람의 갈기를 온몸으로 쓰다듬다 바람에게도 팔 하나 떼어주고 구름에게도, 물가의 악어에게도 팔 하나씩 떼어주었다 그는 당대에 멸종하였다 강한 종은 살아남아 시조가 되었다​* ;의 ‘가난의 경로’ 중 문 / 김령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딸깍, 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사라졌어요, 호흡이 가빠졌어요 출구를 만들고 문을 열면 순식간에 벽으로 변해버리는 삶,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지 못하는 문, 사람들은 16층 3라인에 내가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될까요, 나를 기억할까요? 신문을 봅니다 이제 겨우 두 시간이 지났군요 언제 올지 모르는 식구들, 이러다가 수분을 다 빼앗겨 나는 박제가 되는 게 아닐까요, 한 번씩 문이었던 벽을 밀어봅니다 꿈쩍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날 잊은 걸까요? 애써 청소를 합니다 다섯 시간이 지났군요 바람이 나뭇잎 사이, 잠시 머물다 새의 등을 타고 떠나갑니다열 시간이 지나고 식구들은 문을 만들었습니다 반갑게 다가갔으나 식구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는 현관의 손잡이거나 자전거의 안장이거나, 누군가의 신발이 아니었을까 [당선 소감] 어떤 꿈들이 살아남아 우리를 밀고 가는가 / 김령(본명 김혜영)​아주 오래된 기억부터 꺼내어 본다. 봄날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살과 노란 민들레, 달밤에 하얀 깨꽃을 보며 숨바꼭질 하다가 올려다 본 하늘, 달빛이 발목까지 운명한권 찰랑거려 가슴을 두근거리며 아침을 맞던 일들…. 삶의 고비마다 글을 읽고 글을 쓰며 버텨 왔다. 글을 쓴다는 건 내게 ‘자아실현’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내게만 유난히 가혹하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고개 하나 넘었다 싶으면 느닷없는 복병으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던 그 절망의 순간들마다 독서를 통해 위안을 얻고 글을 쓰며 치유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나를 가두는 덫이기도 했다. 그만 둘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쓰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글을 쓰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제 운명이 특별히 나만 편애한 게 아니듯 특별히 내게만 가혹한 것도 아니란 걸 안다. 스스로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조금씩 자유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쁨도 안다. 또한 삶은 늘 외줄을 타는 것처럼 단 한순간도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낯선 번호가 뜨면서 당선 통보를 받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귀한 가르침을 주신 박순원 시인, 김성철 시인, 생오지 문예창작촌의 문순태 이사장님, 당선 소식을 듣고 제 일 이상으로 기뻐하는 생오지 문우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몸부림칠 때 함께 해 준 ‘파랑’ 동인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지지하고 믿어준 남편과 아들 지상이, 늘 그리운 친정 같은 순천대학교 비봉문학회 후배들에게도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글을 써도 된다는 격려에 힘입어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것이 부족한 나를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시와 경계》에 보답하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지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해본다. 김령(본명 김혜영) 전남 고흥 출생201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 시부문 당선현재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근무​​2017년 시와 경계 제18회 신인우수작품 -문설 바람박물관* / 문설 나무와 나무로 지은 집 나무지붕 사이사이로 하늘이 보인다나무로 된 벽 사이사이 봄꽃들이 보인다 고요만이 오롯하다아무것도 없는 것이 어색해서 가만히 운명한권 눈을 감는다집 중심에 서서 ​붉은 명정銘旌을 두른 나무 관棺이 보인다 장의사를 하는 아버지 친구가 마련해준 집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자어머니는 더 숨죽여 운다​고물자전거를 말처럼 타고 다니던 아버지 눈 내리는 날에는 아버지 몸에서 사리 같은 얼음들이 떨어졌다 가난이 뚝뚝 녹았다 처음 다급하게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의 환한 모습이 정적 속에 부유한다나무 옆구리를 뚫고 칼날 같은 햇빛이 박힌다 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있다 아버지와 나를 두고 박물관을 빠져 나온다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건축가 이타미준의 작품 ​화혼華婚 / 문설 꽃 피어날 화華 혼인할 혼婚 사전을 찾아보았다 모든 자연의 화혼, 어느 곳에서는 지참금에 딸을 얹어 보내는 풍속도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신랑이 염소 열 마리를 신부 집으로 보낸다지 딸을 혼인시키면서 화혼이란 봉투를 많이 받았다이 봉투에 적힌 화華를 보면서 왜 나는 바람에 지는 벚꽃을 생각했을까벚꽃의 화혼 모든 꽃의 화혼, 꽃들이 피었을 때도 나는 혼인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화혼이었다 너무나 화려해서 화자를 쓰는가 내 인생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꽃이 피지 않는 화혼도 있을까 지금 베란다에 난 꽃이 활짝 피었다 화혼을 위해 꽃들도 혼인색 냄새로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모든 봄의 꽃들이 확 졌을 때 화혼이었다꽃 피어날 화인데 자꾸만 꽃 떨어질 화자로 읽힐까 집에 돌아오면서도 줄곧 화華가 생각났다돌이켜 보니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도 화혼華魂이었다 ​사려니숲* / 문설 사려니숲에 가서 알았습니다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냄새를 이 숲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금 이곳을 다녀간 소나기도 이 흙의 냄새를 물고 날아갔습니다 흙의 체취는 오래전 내 기억 속에 살았습니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길은 아는 길은 아는 곳으로 낯선 길은 낯선 곳으로 통합니다세상의 시비是非도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운명한권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 팔이 잘려나간 나무들은 송골송골 피가 묻어있습니다 이 상처를 가라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요 내 작은 상처에도 꼬박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흙비의 얼룩마저 나무들의 무늬가 됩니다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 벌리고 있습니다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제주도에 있는 숲​[당선 소감] 이 작은 세계의 감옥 / 문설(본명 문숙)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되면 내 삶에 소홀해 질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때 내가 당황하게 되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세계가 감옥이란 것을 알았다” 이것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감히 나의 고백처럼 인용해본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신호라고 한다. 흙탕물에 쓰러져 엎드려 있던 나무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비틀거리던 내게 시가 왔고 내가 시에게로 다가갔다. 시를 향한 진심은 바닷속 바다보다 더 푸르렀다. 점점 침침해지는 눈에서 심지도 않은 돌이 자라기도 했다. 결막결석이라니 의아했지만 내가 시작詩作에 제대로 몰입한 결과물은 아닐까 은근히 반가웠다. 눈이 시려 불편하고 괴로웠지만 인공눈물 넣는 것을 자랑삼아 즐기기도 했다. 이제 시를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 나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며 시를 마중할 것이다.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걸어 갈 것이다. 언제나 돌아 갈 곳이 있어서 편하다. 머금은 숨의 깊이만큼 그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식구로 호명해주신 시와경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하며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문설(본명 문숙) 경기도 의정부 출생숙명여자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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